올해 추석은 9월 25일. 연휴까지 나흘도 채 안 남았는데, 아직도 “차례상에 조기를 어느 줄에 놓더라”를 검색하고 계신다면 딱 맞게 오셨습니다. 결혼하고 처음 차례상을 맡게 됐거나, 매년 어머님 옆에서 시키는 것만 하다가 올해부터 주도해야 하는 상황. 아니면 가족 단톡방에서 “홍동백서가 맞냐 아니냐”로 논쟁이 붙어서 팩트체크하러 오셨을 수도 있고요. 추석 차례상 차리는 법은 검색하면 이미지가 수백 장 쏟아지는데, 막상 그 이미지들끼리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더 헷갈립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답은 하나가 아닙니다. 다만 대부분의 집이 따르는 큰 틀은 분명히 있고, 그 틀만 잡으면 나머지는 집안 관례대로 가도 문제가 없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틀을 5열 기준으로 정리하고, 차례 지내는 순서, 실제로 헷갈리는 지점, 그리고 전날 밤 부엌에서 터지는 사고들까지 같이 다룹니다.
차례상, 왜 집집마다 다를까

차례상 차림의 근거로 흔히 『주자가례』나 『사례편람』 같은 예서를 듭니다. 그런데 정작 이 문헌들에는 “홍동백서(紅東白西)”나 “어동육서(魚東肉西)” 같은 문구가 그대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성균관 유도회나 유교 관련 단체에서도 몇 년 전부터 “차례상 간소화” 권고를 내면서 이런 배치 규칙이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그럼 이 규칙들은 어디서 왔느냐. 조선 후기부터 지역·문중별로 굳어진 관행이 근대에 들어 정리·확산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입니다. 즉 “틀린 배치”라기보다 “우리 집 방식”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실전에서 이게 왜 중요하냐면요. 시댁과 친정이 다르게 차려온 집, 형제간에 기억이 엇갈리는 집에서 “누가 맞냐”로 싸울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집안에 연장자가 계시면 그분 기억을 기준으로 잡는 게 가장 깔끔합니다. 없으면 아래 표준형으로 가면 됩니다.
성균관 권고 간소화 차림도 참고하세요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2022년경 차례상 간소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송편·나물·구이·김치·과일·술 정도의 6~9가지면 충분하고, 기름에 지진 전은 반드시 올릴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낸 바 있습니다. 세부 내용은 해마다 조금씩 다르게 소개되니, 정확한 권고안은 성균관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시는 걸 권합니다.
부모님 세대가 강하게 반대하지 않는 집이라면, 이 간소화안이 현실적인 타협점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5열 기본 배치 — 이 순서만 외우면 됩니다
신위(지방이나 사진)가 놓인 쪽이 북쪽입니다. 실제 방위와 무관하게, 상 뒤쪽을 북으로 치고 시작합니다. 그러면 상 앞에 선 사람 기준으로 오른쪽이 동, 왼쪽이 서가 됩니다. 이게 은근 헷갈립니다. “동쪽에 놓으라”는 말은 내가 봤을 때 오른쪽이라고 외워두면 실수가 없습니다.
| 열 | 놓는 것 | 배치 규칙 |
|---|---|---|
| 1열 (신위 바로 앞) |
밥(메), 국(갱), 송편, 술잔, 시접 | 추석은 밥 대신 송편을 올리는 집이 많습니다. 밥은 서(왼쪽), 국은 동(오른쪽). 수저를 담은 시접은 가운데. |
| 2열 | 적(구이), 전 | 어동육서 — 생선은 동(오른쪽), 고기는 서(왼쪽). 가운데는 두부·채소 적. |
| 3열 | 탕(국물 요리) | 소탕(두부·채소)·육탕·어탕. 3탕 또는 단탕 하나만 올리는 집도 많습니다. |
| 4열 | 나물, 김치, 포, 식혜 | 좌포우혜 — 포는 왼쪽 끝, 식혜(건더기)는 오른쪽 끝. 가운데 나물·김치. |
| 5열 (가장 앞줄) |
과일, 과자류 | 조율이시 또는 홍동백서. 아래 별도 설명. |
5열이 제일 싸움 납니다 (조율이시 vs 홍동백서)
과일 줄에서 두 가지 방식이 충돌합니다.
- 조율이시(棗栗梨柿): 왼쪽부터 대추 → 밤 → 배 → 곶감(감) 순. 여기에 사과를 더해 “조율시이”로 배를 뒤로 보내는 집도 있습니다.
- 홍동백서(紅東白西): 붉은 과일은 동(오른쪽), 흰 과일은 서(왼쪽). 사과·대추가 오른쪽, 배·밤이 왼쪽으로 갑니다.
두 방식은 배치가 정반대로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두 규칙을 동시에 지키려고 하면 논리적으로 막힙니다. 여기서 한 번 막히죠. 둘 중 하나를 택하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조율이시를 우선하는 집이 조금 더 많은 편이지만, 집안 관례가 우선입니다.
과일 손질에서 실제로 해본 사람만 아는 디테일 하나. 사과·배는 위쪽 꼭지 부분을 얇게 깎아 평평하게 만듭니다. 그래야 쌓았을 때 안 굴러떨어집니다. 홀수(3·5개)로 올리고, 아래층을 삼각형으로 배치한 뒤 위에 하나 얹는 식이 안정적입니다. 접시 바닥에 키친타월 한 장 깔면 미끄럼 방지가 됩니다.
올리지 않는 음식 — 이건 확실히 지키는 편이 낫습니다

배치는 유연해도, 금기 음식은 비교적 일관되게 지켜집니다. 전날 장 봐서 만들어놨는데 당일 아침에 “그건 빼야 돼” 소리 들으면 허탈합니다. 미리 체크하세요.
- 복숭아 — 귀신을 쫓는다는 속설. 가장 널리 지켜지는 금기입니다.
- ‘치’로 끝나는 생선 — 꽁치·삼치·갈치 등. 하품(下品)으로 여겨 제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기·민어·도미를 주로 씁니다.
- 고춧가루·마늘 양념 — 붉은색과 강한 향을 피합니다. 나물은 간장·소금 위주로, 김치는 백김치를 올리는 집이 많습니다.
- 팥 — 붉은팥 시루떡 대신 거피팥(흰고물) 떡을 씁니다.
- 비늘 없는 생선 — 장어·메기 등을 제외하는 집이 있습니다.
🍑 복숭아는 향만으로도 안 된다며 후식으로도 안 내는 집이 있습니다. 어른 계시면 냉장고 안쪽으로 밀어두세요.
차례 지내는 순서 — 기제사와 다릅니다
여기서 많이들 놓칩니다. 명절 차례는 기제사보다 간소합니다. 술을 세 번 올리는 삼헌(초헌·아헌·종헌)이 아니라 한 번만 올리는 단헌이고, 축문을 읽는 독축도 생략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밥그릇에 수저를 꽂고 문 닫고 나가 기다리는 ‘합문’ 절차도 차례에서는 대개 생략합니다.
- 진설 — 상을 차립니다. 이때 밥·국·술은 아직 올리지 않고 나머지를 먼저 놓는 집도 있습니다.
- 강신 — 제주가 향을 피우고, 술을 잔에 받아 모사그릇(또는 퇴줏그릇)에 세 번 나눠 붓습니다. 그리고 두 번 절합니다. 조상님을 모셔오는 절차입니다.
- 참신 — 참석자 전원이 함께 두 번 절합니다. (남자 2배, 여자 4배가 전통이나, 요즘은 함께 2배 하는 집이 많습니다.)
- 헌작(단헌) — 제주가 술을 올립니다. 차례는 한 번으로 끝냅니다.
- 삽시정저 — 숟가락을 밥(또는 송편)에 꽂고, 젓가락을 음식 위에 가지런히 올립니다. 젓가락 손잡이는 서쪽(왼쪽)으로.
- 유식·부복 — 잠시 고개를 숙이고 기다립니다. 보통 1분 남짓.
- 철시복반 — 수저를 거두고 뚜껑을 덮습니다.
- 사신 — 전원이 두 번 절하며 마칩니다. 지방을 썼다면 이때 태웁니다.
- 음복 — 상을 물리고 가족이 나눠 먹습니다.
상황별 분기
| 상황 | 어떻게 하면 되나 |
|---|---|
| 지방 쓸 줄 모른다 | 영정 사진으로 대체해도 무방합니다. 한지에 쓰는 대신 프린트해서 붙이는 집도 늘었습니다. |
| 모실 조상이 여러 분 | 차례는 대개 한 상에 함께 모십니다. 밥·국·잔은 분마다 따로, 반찬류는 공용으로 놓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
| 기독교 등 종교 문제 | 절 대신 묵념·기도로 대체하는 추도식 형태로 진행하는 가정이 많습니다. 음식은 가족 식사로 풉니다. |
| 1~2인 가구, 상 없음 | 교자상 대신 좌탁이나 식탁 위에 흰 보를 깔고 3열로 줄여도 됩니다. 형식보다 마음이라는 게 요즘 분위기입니다. |
실제로 사고 나는 지점 (전날 밤 체크리스트)
배치보다 여기서 더 많이 망합니다. 막상 해보니 당일 아침이 아니라 전날 저녁 8시쯤이 가장 바쁩니다.
- 탕국은 당일 아침에 데우세요. 전날 끓여두면 무가 물러지고 국물이 탁해집니다. 육수만 전날 내두고 건더기는 아침에 넣는 게 낫습니다.
- 전은 부친 뒤 채반에 겹치지 않게 펴서 식히세요. 뜨거운 채로 쌓으면 아래쪽이 눅눅해지고 모양이 무너집니다.
- 조기는 머리가 동쪽(오른쪽), 배가 신위 쪽을 향하게 놓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걸 두고 ‘두동미서’라고 부릅니다. 구울 때 꼬리가 부러지기 쉬우니 알루미늄 포일로 감싸고 구우면 안전합니다.
- 송편은 당일 아침에 찌거나, 전날 찐 뒤 참기름 발라 밀봉. 냉장하면 굳어버립니다. 실온 보관이 낫습니다.
- 술은 청주를 씁니다. 소주나 막걸리를 쓰는 집도 있지만 청주가 무난합니다. 미리 한 병 사두세요. 당일 아침에 편의점 달려가는 일이 생각보다 자주 생깁니다.
시간 절약 팁 하나. 나물 세 가지(시금치·고사리·도라지)를 각각 볶으면 30분 넘게 걸립니다. 고사리·도라지는 전날 미리 불려서 데쳐두고, 당일엔 시금치만 새로 무치면 15분 안에 끝납니다. 색이 살아야 하는 건 시금치뿐이니까요.
차례상 크기가 애매하면 접이식 교자상 하나 있는 게 편합니다. 평소엔 접어서 세워두고 명절에만 펴는 식으로요. 🛒 쿠팡에서 보기
자주 하는 실수 모음
- 수저를 국에 꽂는 것 — 밥이나 송편에 꽂습니다. 국에 꽂으면 어른들이 바로 지적하십니다.
- 동서 방향 반대로 잡기 — 신위 기준이 아니라 내 기준으로 좌우를 잡아버리는 실수. 앞에서 말했듯 보는 사람 기준 오른쪽이 동입니다.
- 과일 짝수로 올리기 — 음식 가짓수와 개수는 홀수로 맞추는 게 관례입니다.
- 향을 세 개 넘게 피우기 — 보통 한 개 또는 세 개. 향이 너무 강하면 음식 냄새와 섞여 불쾌해지기도 합니다.
- 강신과 참신 순서 바꾸기 — 신위(지방·사진)를 모신 상태라면 강신 → 참신 순이 일반적입니다. 순서가 헷갈리면 “모셔온 뒤 인사”로 기억하세요.
- 절 횟수 — 산 사람에게는 한 번, 돌아가신 분께는 두 번. 이건 거의 모든 집에서 공통입니다.
하나 더. 차례 지낼 때 휴대폰 무음. 유식 단계에서 벨 울리면 분위기가 묘해집니다.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
핵심 요약
- 배치는 5열 구조(밥·송편 → 적·전 → 탕 → 나물·포 → 과일)만 잡으면 되고, 조율이시와 홍동백서는 둘 중 하나만 택하면 충분합니다.
- 명절 차례는 기제사와 달리 술 한 번(단헌)·축문 생략이 일반적이며, 강신 → 참신 → 헌작 → 삽시정저 → 사신 → 음복 흐름을 기억하면 됩니다.
- 복숭아·’치’ 생선·고춧가루·팥은 빼고, 탕국과 송편은 당일 아침에 마무리하는 편이 결과가 훨씬 낫습니다.
정답표를 외우려 들면 끝이 없습니다. 문헌마다 다르고 집안마다 다르니까요. 큰 틀만 잡아두고, 나머지는 “우리 집은 이렇게 해왔다”에 맡기면 그해 추석은 무사히 넘어갑니다. 올해 처음 상을 맡으셨다면, 전날 밤에 이 글 한 번 더 펼쳐보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